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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1/11/1일자 기사

최고관리자 0 113 2017.08.20 12:44
■ 경향신문 2001/11/1일자 기사


마약·알콜중독자 ‘마음의 병' 보듬기 10여년

 

-‘세계십자가선교회'치유원 안일권 목사-
강원 횡성군 서원면의 한 폐교. 몇년 전까지만 해도 고사리 손의 아이들이 공부를 했던 이곳에서 알코올·약물 중독자들의 상처난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일궈주는 사람이 있다.

1k0621a.jpg1999년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세계십자가선교회' 치유원의 안일권 목사(56) . 그 자신이 시각장애인 임에도 불구하고 89년부터 알코올·마약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돕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70여명의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안목사가 알코올·마약중독자들을 돌보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본인도 몇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마음의 병이 컸던 사람이고 그래서 안목사는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과 내적 생채기를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7년 어느날이었다. 갑자기 안개가 낀 것처럼 시력이 흐려졌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만 했고 이듬해 그의 눈에서는 완전히 빛이 사라져버렸다. 그 후 그는 몇년동안 벼랑 끝을 걸었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군복무까지 한 건강한 사회인이었던 그의 삶이 일순간에 뒤엉켜버린 것이다. 몇번이나 죽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아내의 사랑과 배려 때문이었다. 게다가 84년에는 조그마한 무역업을 하다 사업 실패로 부채를 갚지 못해 8개월간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교도소에서였다.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배가 고파 흙까지 파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다 도둑질로 수감생활을 하게 된 한 장애인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렸다. 출소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녹음해 주는 테이프와 점자책으로 공부를 했고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아내가 책을 대신 읽어줬다.

알코올 중독자를 돌보기 시작한 것은 89년,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사글세 방 하나 를 구해 ‘세계십자가선교회'를 열면서부터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알코올 중독자 치유에 나선 것이다. 중독자들이 술을 구하기 위해 세간을 훔쳐가는 바람에 집에 남아나는 물건이 없었지만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92년부터는 마약중독자 치유작업까지 시작했다. 오갈 데 없는 약물중독자 한명을 데려왔다. 3개월이 지나면서 그는 약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기 주변의 친구 한명을 더 데려왔다. 그 친구 역시 3개월만에 회복돼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안목사의 마약중독자 치유가 조금씩 열매를 맺게 됐고 99년 횡성으로 치유원을 옮길 때는 가족이 60여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1k0621b.jpg안목사는 중독자들에게는 남모르는 아픔과 한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중독을 감정의 질병으로 믿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한다. 병원에서와 같은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직업적인 치료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환자들 중에는 병원에 36차례나 입원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마음의 병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죠”.

중독자들은 이곳에서 망가진 육체와 삶, 그리고 포기해버린 자기자신을 되찾아 사회로 돌아간다. 미국의 명문대에 다니던 엘리트에서 어느날 한국의 길거리를 헤매는 노숙자가 되어버린 ㄱ씨(38).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열네살 때였다. 그는 항상 우등생이었고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러던 그가 마약을 시작한 것은 UCLA 4학년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면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마약을 구하기 위해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조건 내다 팔았고 말리는 아버지를 폭행하기도 했다.결국 참다못한 그의 어머니가 신고를 했고 ㄱ씨는 2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미국 시민권이 없는 그에게 뒤이어 닥친 것은 한국 추방. 명문대의 수재로 인정받던 그는 이때부터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살았다. 미국에서 부모가 조금씩 보내주는 돈이 오면 하루종일 술을 마셨고 그 술기운에 싸움질을 해댔다. 그리고 술기운이 떨어지면 우울증이 발작하면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울역 노숙자쉼터를 통해 횡성으로 찾아오게 된 ㄱ씨는 그곳에서 3개월의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새 사람이 돼 서울 쉼터에서 생활하다가 최근에는 시골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

1k0621c.jpg재활 성공 확률은 60~70%. 안목사의 노력으로도 사회에 돌려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국제 결혼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남편에게 버림받은 ㄴ씨가 그랬다. ㄴ씨는 꽃다운 나이 20대 후반에 동두천 미군부대의 군무원과 국제결혼을 했다. 부대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다 만난 사람이었다. 한국 근무기간이 끝나고 미국으로 건너가자 남편은 옛날의 다정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 둘을 낳고 10년 이상을 함께 살았지만 술과 폭행은 계속됐다. 결국 ㄴ씨는 혼자서 살아가기로 했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다시 술집에 나갔다. 그곳에서 마약에 손을 댔고 한국으로 추방되어서도 비슷한 생활을 했다. 치료원을 거친 후 식당 일을 주선해주는 등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ㄴ씨는 결국 힘든 일과 비인간적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술집생활로 되돌아가버렸다.

하지만 안목사는 절망하지 않는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서 그의 가슴은 어떤 아픔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희망은 한번의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 보다 고귀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가을 단풍이 한창인 요즘 횡성 산골에 있는 치유원 운동장에는 낙엽이 수북수북 쌓여 간다. 그리고 숱한 사연으로 내적 상처를 입고 빛을 잃은 채 절망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곳으로 찾아들어 재생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남루한 과거를 이겨내는 희망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취재수첩]마약·알코올 범죄로 한국추방…미 이민1.5세대 매년 100여명-

1k0621d.jpg고국과 미국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따라 ‘희망의 땅' 미국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마약중독이라는 딱지를 달고 한국으로 추방된 사람들이 그들이다. ‘희망의 땅'에서 시민될 자격이 없다며 쫓겨온 그들은 고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얼굴만 한국인일 뿐 말도 문화도 미국인이 되어버린 이들 추방자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길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가 되거나 정신병원 신세를 지면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

안일권 목사는 “시민권이 없고 영주권만 있는 미국 이민 1.5세대 중에서 마약이나 알코올과 관련된 범죄로 현지에서 1년 이상의 형을 산 후 한국으로 추방되는 사람은 매년 100명 정도”라며 “이들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망에서 벗어난 이들은 국내에서 또 하나의 사회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목사는 본국 추방 이민자들의 문제와 관련, 해결되어야 할 과제를 네가지로 꼽았다. 입국하면서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 주민증을 취득하는 등의 행정적인 절차에서부터 의식주의 해결과 치료, 재활과정, 그리고 직업훈련과 복지문제가 그것이다. 그는 또 “현재 LA에서 한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코카인을 구하는 데는 5달러 정도밖에 들지 않아 마약을 구하는 것이 한국에서 소주를 사는 것처럼 쉽다”며 “한국인 이민 1.5세대 젊은이들이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걱정했다.
/횡성/박영환기자/ yhpar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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