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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독자 - 33기

최고관리자 0 134 2017.08.20 08:30
  간증, 술에 대한 이야기라면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 고2때부터 해운대 백사장에서 마셨던 그술이 평생에 내 모습의 시작이었다. 늘 끝장을 보던 술 버릇이 군에 가서도 상사들과 문제를 일어켰고, 직장에서도 누구의 지적이 아니라 스스로 버텨니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해장술 점심때 반주 퇴근후 밤새도록 마시는게 일상이었다. 퇴직후 늘 술로 지냈다. 정신병원 가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지냈다. 술을 못먹게하는 친구들은 만나지 않고 나와 마음 맞는 술친구들만 만났다. 그 중 한친구는 군 동기인데 별로 술을 먹지 못하던 친구를 계속 만나면서, 그 친구도 중독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여자 친구도 술중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나의 삶 이었다.
  늘 술에 절어 살다가 ‘이렇게 죽는구나’하고 쓰러져 자다 깨면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냉장고에서 다시 소주병을 꺼내 마시고 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이불을 적셔놓으면 여자 친구가 와서 빨아주고, 술에 취해 유리를 깨면서 난 상처가 알콜로 인한 혈소판에 생긴 문제로 지혈이되지 않아 온방과 이불이 다 젖어 있는데도 뻗어서 자고 있는 모습, 돈 떨어지면 동생들에게 돈 부치라고하여 술로 지새던 모습. 여자 친구가 장사하는 곳에 가서 매일 돈을 달라고 하다 종업원과 치고 받고 싸우던 모습.
  그러다 금단으로 한밤에 귀신들과 동네에서 뛰어 놀고, 이틀 동안 택시 타고 부산을 배회하며 귀신들과 이야기하고, 웃통을 벗고 귀신들의 이야기대로 대로에서 마라톤을 하고, 웃통 벗은 채로 친구집에가서 집에 일하는 경리 아가씨들을 놀라게하고 그 친구 아버지에게 귀신이 옆에 있다고 헛소리하고, 여자 친구집에 간다고 가서 그 집이 아니라 아파트 제일 위층에서 문 열어 주지 않는다고 집 주인하고 치고 받고 싸우고,
  저는 그렇게 미쳐 갔습니다. 그러다 파출소에가서 난동을 부리다 현명한 한 젊은 경찰의 지혜로 전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퇴원후 그날로 술먹다가 또 정신병원, 언젠가는 부산에서 아는 술집 아가씨가 정신병원에 보호자로 입원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서울 사는 동생들에 의해 서울의 정신병원들을 입원하게 되고, 저 자신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안 먹어야 되는데 안먹어야 되는데 도무지되지 않았습니다. 친척 형집에 일하며 좋아질까도 생각했지만 되지않았고, 산에 마음공부한다고 가서도 3개월을 넘지 못했습니다. 친척들은 굿을 해보자고도하고,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한 저는 두달 일하여 한달 술먹고 한달 입원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노동을 하면서 적당히 음주도 하고 일도 한다고 했지만 돈은 하나도 모이지 않고 중국교포의 입금된 돈까지 술로 먹는 모습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다 술 먹는 것이 너무 힘들어 경찰서에 가서 ‘아저씨 저 한 이틀만 유치장에 넣어주세요’라고 하니까 안된다고 해서, 옆에 있는 구청에 가서 ‘이틀만 숙직실에 묶어 달라’고했더니 당직자가 부랑인 시설인 은평의 마을이라는 곳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설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달 있다가 자유의 집이라는 노숙인 시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상담을 받을 때 알콜들이 생활하기 좋은 곳이 있는데 가겠느냐며 십자가 선교회를 소개했지만 매여 있는 것이 싫다고 가지 않고 문래역 부근의 야채시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겨울 김장때라 바쁘기도 했도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날이 추우니 술도 한잔씩하고 장사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술이 문제였습니다. 배달가면 꼭 한잔씩 먹게되고 추워서 먹게되고 하다보니까 또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유의 집에서는 술먹은 사람은 통제하는데 저는 아무도 건들이지 않았습니다. 술 취해 방에다 오줌을 싸기도 했는데 제가 잘해준 어떤 분이 새담요를 갔다두기도 했습니다. 장사 하면서는 어떤 날은 술 취해 야채 파는 차에서 자고 있으니 주인이 나를 두고 그냥 가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술에 취해 자유의 집 방에서 자고 있는데 십자가 선교회에서 와서 저를 실고 와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회복실에 있는데 예배드리는 소리가 들려 ‘저도 참석해도 되느냐’고 물으니 참석하라고 해서 그때부터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진짜 간절했습니다. 진짜 술을 끊고 싶었습니다. 예배 때 제일 앞 자리에 앉아 목이 터지라고 찬양했습니다.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박수를 쳤습니다. 처음에는 아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고통을 생각하며 쳤습니다. 진짜 손바닥 가운데가 갈라지고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증거다’라고 혼자 생각하며 더 열심히 외치고 박수 쳤습니다.-어떤 분이 나중에 ‘너 같이 소리치고 박수치는 놈 중에 제대로 된 놈이 없드라’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러니까 나중에 손바닥 가운데 굳은살이 베겼습니다.
  저녁 마다 혼자 11시부터 한시간씩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저의 추한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 할 수 있었고 저로 인해 고통 받았던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전 까지는 제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오직 술만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똑바로 볼 수있었을 때 나의 추하고 악한 모습들이 다 보였습니다. 내가 진짜 죄인이었습니다. 그 죄로 인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항상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고,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혼자 괴로워 하며 힘들어 하던 모습들, 주변인들에게 ‘당신들이 좀 바뀌어보세요’ 라고 외치던 모습들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인해 나의 죄를 보게되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은 것을 알게되고 나의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세상이 확 바뀐것을 보게되었습니다. 아니 그 추하던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제가 바뀌니까 그렇게 추하던 세상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교회에 있는 형제들을 보면서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중독자 형제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천국임을 알았습니다. 진짜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1년 좀 지나 다시 재발했습니다. 그 때는 쉼터에 있을 때 신학교에 떨어졌는데 사실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저에게 옛 모습들이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이곳이 내가 있어야 될 곳이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저를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바로 정신병원에서 일주일 정도있다 퇴원했는데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병원 같다오면 주변을 의식하여 소침해지고 자학하며 다시 술을 찾았는데 그런 모습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제모습이 진짜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고 두 번더 재발하였습니다. 꼭 1년 간격으로 재발하는 것이 또 내가 주기를 만들었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 뒤 쉼터에서 나가 2년간 생활하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때 마다 주변의 교회를 찾았습니다. 오직 그길 밖에 없다는 것을 선교회에서 알았기 때문에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진짜 주님의 도움으로 신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생활도 너무 재미있고 좋습니다. 며칠전에는 부산 친구와 통화하는데 그 친구가 교회를 다닐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가 강의하는 시간에 젊은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군요 술로 인해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다고 그런데 하나님으로 인해 새 삶을 산다고 자랑한다는 군요
  제가 이렇게 있게 됨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면서 아직도 나에겐 내려놓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에게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는 부분을 찾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고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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